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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골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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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Tour 04

 

정릉골, 문화유산이 되어야 할 곳

시티뷰와 북한산뷰 넘나드는

달동네 시간 여행해요

 

정릉골을 안 지 4, 살게 된 지 2년ᐧᐧᐧ 매일매일 정릉골 사랑은 깊어간다. 내가 살고 있는 정릉골은 서울에 두 곳밖에 남지 않은 도시가스 공급이 안 되는 진짜 달동네다.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로 인해 부동산 바람이 불고 한때 인심도 흉흉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고 저마다의 인생이 쌓이고 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프로그램을 짜거나 지인이나 불특정 대상을 초대해 산책 수준으로 정릉골 투어를 진행한 적이 대여섯 번 있다. 그들의 후기는 모두 이 마을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사람들에게 이 마을의 존재를 알리고 오게 하는 것, 곧 당신도 이곳에서 만나길 바라본다.

 

글ᐧ사진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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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정릉골을 사랑하는 이유

 

항상 드는 의문은 왜 똑같은 모양의 집을 짓고, 심지어 시장 간판도 다 똑같이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개성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다른 사람이고 상인들인데, 자꾸만 똑같아지라고 하는 걸까. 정릉골도 마찬가지다. 고급 주택단지, 타운하우스ᐧᐧᐧ 지금의 개성과 다양성을 없애고 또 똑같은 집을 주르륵 지을 심산이다.

처음 정릉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정릉천 산책로와 연결되는 마을 입구 벽 때문이었다. 박경리 생가가 있어 그의 얼굴과 토지글씨를 그려 넣었고 그 옆에 정릉골이라 쓰여 있었다. 정겨운 이름과 박경리 작가가 오래 살았다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도치 않게 솔샘사거리 고가 위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정릉골을 만났다.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 능선을 타듯 북한산을 올려다보고 아래로 마을을 보며 걷다가 어느 골목으로 내려오니 국민대학군단 건물이 있었다. 그 건너편에 일 때문에 자주 왔던 삼덕마을주민자치센터가 보였다. ~ 이렇게 큰 동네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정의 눈 밖에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고 내 눈에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전봇대가 들어왔다. 나무전봇대라니ᐧᐧᐧ 이 동네는 대체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사계절을 네 번 겪는 동안 거의 매일 동네를 산책하며 찍은 사진을 보면 내가 이 동네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 살아?”

저기 위에 살구나무집에 이사 왔어요.”

~ 거기 살구, 매년 징하게 열려~ 친구들 불러서 따먹어~.”

집을 동 호수나 번지수가 아니라 살구나무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우리 옆집은 감나무집, 뒷집은 대추나무집이다. 은행나무집도 있고 소나무집, 탱자나무집도 있다. 장미넝쿨집, 사발꽃집, 수수꽃다리집도 있다. 파란대문집, 초록대문집, 노란대문집은 또 어떤가. 똑같이 생긴 집이 하나도 없고, 모든 집에 마당이 있으며 그 마당마다 주인이 좋아하는 나무와 꽃이 자라난다. 이 동네는 계절이 있어 좋다.

이사 오고 몇 주간 혹시 반려견이 집을 나가도 찾아올 수 있게 하겠다며 작정하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1만여 평 규모의 마을은 좁은 골목으로 연결되어 미로처럼 찾아다니는 일도 무척 재밌다. 길 모양이며 포장 상태가 다 다르고, 집집이 담벼락을 보는 재미, 저마다 소소하게 가꿔 먹는 작은 텃밭이나 상자텃밭의 변화를 살피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호박 줄기가 엄청 퍼지네요~ 잎 몇 개만 따가도 돼요?”

안 돼 이건~, 저 뒤에 거에서 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져 텃밭 구경하다가 친해진 이웃도 제법 많다. 어르신들만 살 거라 생각하는데 나같이 조용하게 작업할 공간을 찾아온 이들이나 학생 자녀를 둔 가족도 많다.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고 차량도 진입하지 못하는데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글쎄, 불편은 그렇게 여기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불편한 것이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얻는 것이 더 많으니 나의 정릉골 삶은 충분하다. 전기와 상수도가 들어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직 연탄보일러인 집들이 즐비한 가운데 기름보일러 때는 호사까지 누리니, 충분하다. 일부러 운동도 하는데 오며가며 계단 오르기를 하니, 건강관리로도 충분하다. 옥상에 올라가면 집 앞으로 시티뷰가 집 뒤로는 북한산 뷰가 펼쳐지니 힐링이 따로 없다. 동네가 넓어 주차장(유료, 무료)도 충분하니 많이들 놀러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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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국인 투어, 연탄과 구멍가게

 

작년 늦봄, 정릉시장 이웃 청년들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정릉투어를 한 적이 있다. 반응을 보기 위해 무려 4개 국어 통역이 가능한 친구 몇몇이 함께 했다. 인스타그램에 투어 참가자를 모집하니 하루 만에 9명 정원이 찼다. 한국 여행 온 지 1주일 된 사람도 있고, 전날 도착한 사람도 있고, 3개월째 여행 중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 정릉시장 슬로카페달팽이에서 만나 정릉천을 걷고 경국사에 들러 돌아보기

- 다시 정릉천을 걸어 박경리 가옥 골목으로 정릉골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기

- 국민대학군단 건물 방향으로 내려와 마을 입구 구멍가게에서 하드한입

- 다시 가장 긴 계단을 올라 마을 능선을 타고 솔샘사거리 고가로 내려옴

- 정릉시장 반찬가게에 들러 각자 먹고 싶은 반찬 사기

- 정든마을주민자치운영센터 공유부엌에서 함께 잡채 만들기

- 밥을 지어 사온 반찬과 잡채를 놓고 둥그런 상에 앉아 함께 밥 먹기

 

아침 9시에 만나 오후 1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모두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결국 카페에 가서 빙 둘러 앉아 후기를 나누는데, 이 투어 프로그램을 하면 대박 날 것 같아 괜히 설렜다.

 

투어에 참가한 외국인들은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서울의 달동네를 처음 경험했다. 그들이 가장 열심히 사진을 찍고 궁금해 한 것이 연탄재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특히 난방이 필요 없는 열대지역에서 온 친구는 어메이징을 연발했다. 이 마을의 시간을 담고 있는 전봇대와 집 형태들에 대한 설명도 좋았다고 했다. K-드라마 팬인 친구는 드라마에서 송중기 집으로 나온 곳을 알아봐서 모두 놀랐다. 이후 가이드 내용에 정릉골에서 찍은 드라마나 영화 소개를 추가했다. 골목을 오르내리는 것은 힘들었지만 아기자기하고 풍경이 좋아서 값진 경험이었다고 했다.

 

경동시장이나 다른 시장에서 진행하는 투어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외국인은 프로그램대로 쫒아가는 것에 반해 자유로운 진행이 좋았다고 했다. 반찬가게에 간 것과 만들어 보고 싶은 음식 재료를 사서 바로 해본 것이 좋았다고 했다. 반찬문화와 방바닥에 앉아 빙 둘러 함께 밥을 먹는 경험도 잊지 못할 거라는 후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구멍가게에 앉아 쉰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투어의 후반을 달려가는 시점에서 낡은 의자에 앉아 아이스케키를 하나씩 먹으며 나누는 대화와 표정을 살피니 매우 만족스러웠다. “편의점만 가봤는데 이런 작은 가게도 재밌다는 말이 들렸다.

불만은 두 가지였다. 가이드인 나의 말이 너무 빠르다는 것과 투어 코스 중간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 정식 투어 프로그램이 된다면 화장실을 빌려줄 정릉골 주민을 섭외하거나 구청에 지어달라고 요청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정릉천 코스에는 솔샘사거리 아래쪽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외국인 가이드를 할 때는 통역하는 이에게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는 걸 배운 값진 경험이었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더 많은 외국인에게 정릉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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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골목과 계단, 벽화와 텃밭, 꽃과 나무

 

정릉골을 산책하다보면 좋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북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러온 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렌즈 방향과 화폭에는 다양한 집들, 골목과 계단 풍경, 다양한 벽화와 텃밭, 계절에 따라 다른 꽃과 나무들이 들어 있다. 우리는 결국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이뤄낸 풍경을 원하는지 모른다. 모르면 몰랐지 정릉골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와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이곳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들의 일상을 방해해서는 안 되고 무례한 질문이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주민과 마주치면 눈인사나 가볍게 안녕하세요정도면 충분하다. 한번은 한 청년이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 ~ 이런 곳이 있네~ 신기하다하며 큰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집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 같아 문을 열고 어디에 온 분이냐물으니 그냥 아래서 올라와 봤는데 이런 동네는 처음이에요하며 여기도 사람이 사는구나하는 눈빛을 보낸다. “조금만 조용히 다니시면 좋겠어요. 뭔 일 났는 줄 알고 나와봤잖아요하고 들어왔다. 이해는 한다. 표현만 조심해주길 바란다. 연탄 봉사를 하러 오는 이들에게도 가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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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길고양이와 함께 살기

 

정릉골을 소개하며 함께 산책을 하다보면 대부분 길고양이들을 보고 좋아한다. 이제 거의 모든 동네 길고양이들과 알고 지내는 터라 성격까지 이야기해주지만 만지거나 먹이를 주지는 말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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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한산 바라보며 산책하는 맛

 

시티뷰와 북한산뷰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북한산뷰다. 정릉골은 북한산 둘레길과 연결돼 조금 길게 산책을 하고 싶은 날은 청수사를 지나 정릉탐방로안내소를 거쳐 정릉천으로 내려와 집으로 온다. 거의 매일, 하루에 몇 차례 반려견과 산책길에서 만나는 북한산은 매번 다른 모습이지만 늘 아름답다. 어느 날은 운무 피어오르고 어느 날은 선명한 라인을 자랑하며 어느 날은 해가 지고 있다. 북한산을 바라보며 사는 것, 정릉골 최고의 매력이다.

 

정릉골을 여행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잘 아는 이와 동행하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 내년에 버들치마을 프로젝트가 발전해 실제 마을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면, 그때 만나자. 더 체계적으로 잘 준비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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